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울 한양도성 (문단 편집) == 기타 == * 남산과 인왕산, 북악산은 객관적인 높이 자체는 높지 않지만 서울이 낮은 평지가 많다보니 꽤 경사가 있다. 특히 북악산을 [[창의문]](북소문)쪽에서 올라가기 시작한다면 단번에 200m를 계단으로 걸어올라가야 하니 급격히 증가하는 운동량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. 바꾸어말하면 넓은 평지 위에 드문 산이니 올라가면 서울 일대가 한눈에 보인다. ~~잠실 [[롯데월드타워]]와 [[63빌딩]]으로 동서남북 가늠하기도 쉽다~~ 나름 굉장한 장관이니 운동을 겸해서 종종 올라가면 재미가 있다. * 성벽 위에 올라가는 것은 금지되어 있어서 위험하다고 곳곳에 써있지만, 감시가 느슨한 곳에서 위에 걸터앉거나, 올라서서 사진을 찍는 외국인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. * 극소수의 조선시대의 벽돌이 아직까지 남아서 사용되고 있으니 잘 찾아보면 보인다. 한자로 축성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. * 길이가 상당히 긴편에 속하는데 한양도성의 총 길이는 18.627㎞이고 현재 길이는 12.344km이다.[* '''4. 복원''' 단락 이미지 참조] 해외의 도시성곽과 비교해보면 세계 최장의 성은 중국의 [[남경성]]으로 총 길이는 약 34km이고 현재 길이는 약 25km이다.[[http://www.cityofnanjing.com/article/the-ming-great-wall-of-nanjing/|출처]] 비교해보면 길이가 남경성의 절반 정도가 된다고 할 수 있다. 그 외에 긴 성벽으로 역사상 총 길이가 약 19km였던 [[로마]]시의 [[아우렐리아누스 성벽]]이나 그보다 더 거대했던 [[콘스탄티노폴리스]]의 [[테오도시우스 성벽]]이 있다. 그러나 이 둘은 한양 도성보다 보존상태가 좋지 않다. 콘스탄티노플 성벽은 가장 두꺼운 삼중성벽 부분만 잘 보존되어 있으며, 아우렐리아누스 성벽의 경우 3분의 2 정도 남았지만 한양도성의 현재 길이보다 약간 짧다. 과거 [[춘추전국시대]] 중국 최대의 도시였던 [[임치]]의 성벽둘레는 21km였고 [[전한]]시대의 장안성벽의 둘레는 25km, 당나라 장안성의 경우 36.7Km에 달하였지만 오늘날에는 고고학 조사를 통하여 그 흔적을 찾을수 있을 뿐이다. 국내에 소재하는 도시성곽과 비교해보면 [[만월대#s-5.1|개경 나성]]은 길이가 약 16km, 개경성 총길이는 23km로 더 길고[[http://encykorea.aks.ac.kr/Contents/Index?contents_id=E0070799|출처]][* 개경성은 한양도성처럼 1단 구조가 아닌 4단 겹구조이다. 가장 바깥의 외성만 있는것이 아니고 내성, 황성, 궁성이 외성 안에 또 있었다. 개경성은 [[강감찬]] 제의 [[왕가도]] 건설으로 1009년~1029년의 21년간 30만 4,000여명의 인력으로 나성(외성), 황성(발어참성), 궁성 3중 구조로 건설하고 [[여말선초]] 1391년~1393년 8.5㎞의 내성 축조로 총 둘레 약 23㎞의 나성(외성), 내성, 황성(발어참성), 궁성 구조의 4중구조, 25개 성문으로 완성되었다.] [[평양성]]은 총 길이가 약 16km로 약간 짧으며 성벽의 총 연장길이까지 따지면 약 23km로 더 길다.[[http://contents.nahf.or.kr/item/item.do?levelId=cr.d_0008_0010|출처]] [[태봉국 철원성]]은 총 길이가 약 12.6km이며 [[수원 화성]]은 총 길이 약 5.5km이다. * 역사적으로 1980년대 무렵까지 '서울 시내' 는 한양도성이 있던 전통적 중심지인 사대문 안 중구, 종로구 일대를 지칭하는 표현이었지만 이후 부도심이 발전하고 서울 내에서 생활권이 분산되면서 근래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 표현이 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